조용히 퇴사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엔 불안과 설렘이 공존했고, 그 사이에서 여러 감정의 파도를 지나야 했습니다. 이 글은 퇴사 직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1년 동안 어떻게 감정과 태도가 변화했는지 돌아보는 기록입니다.
퇴사 직후의 나: 자유 앞에 설렘과 불안이 교차하던 시간
퇴사를 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해방감이었습니다. 더는 지긋지긋한 회의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고, 아침마다 출근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쉬어졌습니다. 마치 긴 수영 끝에 물 위로 얼굴을 내민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드디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며칠간은 느긋하게 잠도 자고, 늦은 아침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며 휴가 같은 일상을 즐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이 올라왔습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앞으로 뭘 하지?’라는 질문이 하루에도 수차례 머릿속을 맴돌았고, 아무도 내 시간을 통제하지 않지만 그 자유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당시의 나는 의욕은 넘쳤지만 방향이 없었고, 마음은 초조했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척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소셜미디어 속에서 멋지게 퇴사 후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더 작아졌고, 퇴사 전보다 더 외로워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퇴사 직후의 나는 말 그대로 ‘길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가득했지만, 막상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자존감은 조용히 깎여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수많은 흔들림과 나를 다시 세운 시간들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고민과 실험, 실패와 자각이 있었습니다. 글을 써보기도 했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고, 수익화를 위한 블로그나 SNS도 시작해 보았습니다. 하루는 뿌듯했고, 다음 날은 초조했으며, 그다음 날은 무기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정체기와 슬럼프도 있었습니다. 특히 퇴사 6개월 즈음에는 다시 취업을 고민하기도 했고, ‘처음으로 번 5,000원’이 주는 의미를 과하게 확대하며 애써 위안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작은 수익이, 나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일상을 다시 설계했고, 무의미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루틴을 만들었으며, 하루에 단 1시간이라도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자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하나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퇴사 전에는 ‘일’이 나를 정의했지만, 지금은 ‘태도’가 나를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을 하든 나의 주도권 안에서 움직이고 싶다, 그 마음이 나를 끌고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확실히 더 단단해졌습니다.
퇴사 1년 후,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금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습니다. 수입은 불규칙하고, 아직도 미래가 불투명하며, 때때로 외로움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더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것을 향해 하루하루 성실하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퇴사 전의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았습니다. 성과를 내야 칭찬받았고, 맡은 바를 완수해야 쓸모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인정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성과가 없는 하루라도, 그 하루를 온전히 내 방식대로 살아냈다면 나는 잘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느리지만 꾸준히 걷는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쓰고 있고, 돈이 중요한 순간도 인정하면서도 내 가치를 돈으로만 측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나는 이제 ‘쉬는 것도 용기’라는 말을 체감했고, 나를 비워내는 시간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퇴사 후 1년, 나는 더 이상 회사원도 아니고, 프리랜서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지금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퇴사 후 1년은 자기 자신과 가장 깊게 마주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무너지고, 회복하고, 다시 다짐하며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습니다. 퇴사 직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듭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더 진짜에 가까운 사람. 그게 지금의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