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의 삶은 누구에게나 막연한 로망이 있지만, 그 환상은 생각보다 빨리 균열이 생깁니다. 자유로운 시간이 주는 달콤함은 분명 존재했지만, 예기치 못한 불안과 정체감의 혼란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 글은 퇴사 후 첫 한 달간 느꼈던 감정의 파동과 일상의 변화를 담은 기록입니다.
퇴사 첫날, '나만의 아침'이 준 해방감
퇴사한 첫날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떴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휴가가 아닌, ‘이제 진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그날 아침은 커피를 천천히 내렸고, 늦은 아침을 먹으며 햇살을 온전히 즐겼습니다. 평일 아침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제는 나도 한가한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회사 다닐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보았습니다. 책도 읽고,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요가 수업도 등록했습니다. 창문을 열고 음악을 틀어두는 시간마저도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삶이야.” 그 첫 일주는 말 그대로 '퇴사 버프'의 절정이었습니다.
주변에서도 “좋겠다”, “진짜 용기 있다”는 말들이 쏟아졌고, 나 역시 그런 말들에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나는 내가 싫어하던 일에서 벗어났고,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결정을 했고, 이제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시작한 듯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 찾아온 불안, 그리고 ‘이게 맞나’의 시작
하지만 그렇게 달콤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습니다. 두 번째 주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이상하게도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특별한 목적이 없었고, 하루가 길어졌습니다. 일정 없이 보내는 날이 늘어날수록,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습니다.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달 정도는 푹 쉬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자”고 나름의 방향은 잡아두었지만, 막상 현실 속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손에 잡지 못했습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점점 느려졌고, 의미 없는 SNS 탐색이 늘어났습니다. 눈은 멍하니 떠 있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자신을 채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만 멈춰 있는 거 아닐까?”
특히 주변에서 “지금 뭐해?” “어디 취직할 거야?” 같은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애써 웃으며 넘겼지만 내심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자랑스러웠던 퇴사라는 선택이, 이제는 나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유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 자유를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달라진 일상과 정체성, 그리고 다시 쓰는 시간의 의미
퇴사 전까지 나는 늘 일정한 루틴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고, 출근하고, 회의를 하고, 퇴근하면 지친 몸으로 씻고 자는 반복적인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퇴사 후에는 시간은 나에게 완전히 주어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만 남은 하루는 예상보다 더 막막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오전엔 무조건 산책을 나가고, 오후엔 독서나 글쓰기를 하는 등 느슨한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하루의 끝에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를 되짚으며 작은 성취감이라도 쌓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퇴사’는 단지 회사를 그만두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구조와 의미를 스스로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계획에 약했고, 혼자 있는 시간에 불안했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실들을 인정하고 나니,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퇴사 후 첫 한 달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자유의 달콤함이 있었고, 그다음엔 갑작스러운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두 감정 모두를 통과한 지금, 저는 그 시간을 단순한 공백이 아닌 내가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내가 나와 다시 연결되는 시작이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조금씩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첫 번째 조각이 바로 퇴사 후의 첫 한 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