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선언하고 조언을 구하는 시대에,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 선택은 두려움이 아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가장 조용한 방식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 결심의 과정과 이후의 감정을 진솔하게 담고자 합니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내 안의 무너짐들
퇴사를 결심하게 된 시점은 생각보다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서서히 번지는 물감처럼,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스며든 감정의 축적이었습니다. 늘 회사에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나름 인정도 받았고, 맡은 일도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하루에 한 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일이 크게 느껴지고, 동료의 한 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의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온 감정 정리는 어느새 마음의 짐으로 쌓여 있었고, 지친 마음은 더 이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자,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불면, 위장 장애, 이유 없는 피로감. 병원을 가도 특별한 원인은 없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더는 버티고 싶지 않았고, 더는 나를 억지로 밀어붙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마음속에 결심이 자리 잡았습니다. 나는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소리 없는 퇴사, 말하지 않기로 한 이유
사람들은 퇴사를 결심하면 ‘어떻게 말할지’를 먼저 고민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반대였습니다. ‘굳이 말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조용히 퇴사한다”는 말이 거창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의외로 담담한 선택이었습니다. 거창하게 인사하지 않고, 회식도 없이, SNS에 글 하나 남기지 않고 퇴사하는 것. 그렇게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솔직히 ‘설명하고 싶지 않음’이라는 감정이 가장 컸습니다. 퇴사를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계획은 뭐야?”, “왜 그만두는 건데?”, “그래도 계속 다니는 게 낫지 않아?”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관심의 말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의 저에게는 마치 내 선택을 검증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반응이나 조언을 듣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해줄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 앞에서 나의 혼란스러움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저는 어떤 말도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습니다.
“조용한 퇴사”라는 선택의 의미
조용히 퇴사한 뒤에도 한동안은 스스로가 이상했습니다. 마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기분, 아무런 태그가 달려 있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용히 퇴사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평온도 있었습니다. ‘축하해’도 없었고, ‘아쉽다’는 말도 없었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조용한 퇴사”는 결국 내 인생에서 내 목소리를 되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세상은 늘 계획과 타이틀, 다음 스텝을 묻지만, 나는 처음으로 ‘지금 나’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 선택이 항상 편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에서 이탈한 스스로가 낯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용히 퇴사한 것은 그 어떤 화려한 결정보다도 나에게 더 큰 용기를 요구했던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퇴사한 그 선택이야말로 내 삶을 조금 더 솔직하게 살아가게 만들어준 첫걸음이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조언 대신 침묵을 택한 용기,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한 퇴사’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