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원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예상치 못한 공허감이 찾아왔습니다. ‘하고 싶은 일’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더 괴로웠습니다. 이 글은 무계획한 시간 속에서 겪은 감정의 흐름과, 나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루틴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제 뭐 하지?"라는 질문이 시작되었을 때
퇴사 후 첫 며칠은 평온했습니다. 매일 알람 없이 눈을 뜨고, 늦은 아침을 먹고, 공원 벤치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의 흐름을 만끽했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여유를 되찾은 듯했고, ‘이제 진짜 나만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생각보다 빨리 무게감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면서부터였습니다. 마치 푹 쉬고 난 휴가의 끝자락처럼, 어느 순간 "이제 뭐 하지?"라는 질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자유롭게 흐르던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는 방향을 잃은 강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루 종일 뭘 했는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자책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지금 이 시간에 친구들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가진 시간조차 나를 압박하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유는 충분했지만, 방향이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의무보다도 더 큰 불안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시간의 ‘양’이 아니라 ‘의미’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무계획의 자유가 준 혼란과 멘탈의 요동
무계획한 자유는 때로 해방이 아닌 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일어나야 할 이유도,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없었기에 늦잠을 자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행복처럼 느껴졌지만, 그 상태가 반복되면 될수록 자꾸만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매일 주어진 업무가 있었고, 그 안에서 나름의 역할과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진 순간, 정체성의 한 축이 무너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향해 일정을 요구하지 않고, 어떤 결과물도 평가하지 않기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기의 나는 작은 일에도 의욕을 잃고,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민감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뭘 하지?”라는 질문을 반복하면서도, 막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유튜브 영상 몇 편, 뉴스 앱 스크롤, 배달 음식 주문, 그게 하루의 대부분이 된 날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무기력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자유란, 방향이 없을 때에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감정의 늪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은 때로 더 깊은 무력감으로 이어지며,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라는 끝없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방향이 아닌 리듬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하루 루틴
그 무기력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저는 큰 목표보다 작은 루틴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 대신, 일단 하루의 리듬부터 회복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산책을 나가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글을 조금 쓰는 것. 처음엔 이 짧은 루틴도 꾸준히 지키기 어려웠지만, 며칠을 반복하자 조금씩 마음의 중심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루틴은 나에게 다시 ‘시간의 감각’을 되돌려주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시간 안에서, 루틴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계획 없는 하루에서 루틴 있는 하루로 바뀌자,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단지 구조가 무너진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이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의 구조를 회복한 뒤부터는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실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계획부터 세우고, 너무 먼 미래가 아닌 오늘 하루를 기준으로 생각하자 ‘지금의 나’가 명확해졌습니다. 루틴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내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일상의 기둥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 방향이 없다면, 자유는 어느새 불안과 무력감을 몰고 오는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틴을 만들고, 그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회복하자, 비로소 그 자유는 나를 위한 공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퇴사 이후의 시간은 어쩌면 ‘삶의 틀을 새롭게 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