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사이에서 내가 겪은 갈등과 변화, 그리고 결국 선택하게 된 방식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고 싶은 일에 모든 걸 걸 수 있을 줄 알았다
퇴사 후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림, 글쓰기, 콘텐츠 제작, 여행을 통한 기록, 나만의 브랜드. 회사에 다닐 때는 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이었고, 퇴사 후에는 그 일들이 곧 내 미래가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설렘이 컸습니다.
알람 없이 눈을 뜨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글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배우고, 시도하고. 스스로에게 주는 자유가 이렇게까지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매일이 꿈꾸던 삶에 가까워진 듯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현실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그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그 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커졌습니다. ‘좋아하는 일’과 ‘지속 가능한 일’ 사이의 차이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익이 나지 않고, 반응이 없어도 계속할 수 있는가? 혼자서 방향 없이 만들어가는 일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불확실성과 경쟁이 가득한 시장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그때부터 고민은 조금씩 무거워졌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있지만,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제안도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직무나 경력, 혹은 관련된 아르바이트와 외주 작업들. 손에 익은 일이었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며, 짧은 시간 내에 수익도 가능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일들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당장의 생활비도 필요했고, 안정된 흐름도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능숙한 나’로 돌아간 듯한 경험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더 ‘현실적인 선택’ 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일은 익숙했고, 성과도 나왔지만, 퇴사 직후 느꼈던 설렘과 확장감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 일들은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 몰라도,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올인하자니 불안하고,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니 공허한 상태.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할 수 있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 단, 그 일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를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는 점도요.
균형을 찾는 삶, 그 사이에 선 내가 더 단단해졌다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완전히 같을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방향을 주고, 할 수 있는 일은 추진력을 줍니다. 두 바퀴가 함께 돌아야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의 시간을 반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수익을 위한 일, 내가 익숙한 일에 집중하고, 오후에는 하고 싶은 일, 나를 확장시키는 일에 시간을 씁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상과 현실, 열정과 생계가 함께 숨 쉬는 삶이 조금씩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이 균형이 늘 쉬운 건 아닙니다.
때때로 다시 현실이 너무 무거워질 때도 있고, 반대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무리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균형을 조정하는 이 리듬 자체가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내가 진짜 바라는 건 ‘오직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현실도 무너지지 않게 사는 삶’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 vs. 할 수 있는 일, 그 사이에서 흔들린 시간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간극이 나의 결핍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능성과 성장의 여지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는, 하루하루를 조율하며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내 방향을 지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