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맞이한 평일 낮, 세상이 이렇게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시간, ‘회사 밖’의 세상은 조용하지만 제법 풍성하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낮의 풍경과 그 속에서 느낀 낯선 감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평일 낮의 카페, 그 조용한 생명력
퇴사하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평일 낮에 카페에 간 날이 기억납니다. 오전 11시쯤이었고, 그날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바깥공기가 그리웠습니다. 익숙한 동네였지만, 평일 낮에 걸어본 건 처음이었고, 그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이 시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놀라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자리는 이미 차 있었고, 사람들은 조용히 노트북을 펴고 일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친구와의 수다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시간, 나는 분주하게 이메일을 확인하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시간인데, 이곳에서는 시간의 결이 전혀 달랐습니다. 더 천천히, 더 부드럽게, 더 여유롭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순간 묘한 감정이 스쳤습니다. 나는 이 풍경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약간의 충격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느낀 건, 이 사람들은 결코 ‘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었고, 그 안엔 나름의 리듬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일하는 방식은 정말 다양하구나’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낮 시간대의 거리와 공원, 다른 얼굴을 한 도시
평일 오전의 거리를 걷는다는 건, 마치 내가 사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늘 바쁘게 출퇴근하던 길이었는데, 같은 길을 천천히 걸어보니 전혀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습니다. 햇빛은 다정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가로수 사이사이엔 고양이 한두 마리가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건 공원의 풍경이었습니다. 평일 대낮의 공원엔 예상치 못한 생명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 느릿느릿 걷는 어르신들, 벤치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책을 읽는 청년들까지. 모두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 모습은 참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 풍경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늘 바빴고, 그래서 이런 일상을 몰랐던 것 아닐까?’
삶에는 속도 말고도 리듬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 리듬을 따라 사는 삶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오직 ‘빨리’만을 외치며 달려왔던 건 아닐까 하고요.
이 시간의 도시가 이렇게 고요하면서도 살아있다는 사실은, 내가 놓치고 있던 감각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 속에 있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퇴사 후의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정상’이라는 기준 바깥에서 만난 사람들
회사에 다닐 땐 매일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일정한 루틴을 따르는 삶만이 ‘정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어딘가 ‘특별한 사람’이거나, 혹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일 낮의 세상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은, 그 어떤 기준으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후 2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 중인 1인 사업자, 아르바이트 전 쉬는 시간을 보내는 대학생,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엄마, 은퇴 후 독서와 산책으로 하루를 구성하는 어르신까지. 그들은 ‘회사가 없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결코 멈춰 있는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진정성 있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도 많았습니다. 그들을 보며 나의 ‘정상’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좁고 단편적이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고, 퇴사 이후에야 내가 속했던 시스템 바깥에도 충분히 다채롭고 충만한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회사 밖 세상은 ‘특별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라는 것. 그 사실이 나를 위로했고, 동시에 이 낯선 세계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퇴사 후 처음 마주한 ‘회사 밖 세상’은 나에게 소소하지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평일 낮이라는 시간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삶의 흐름. 그동안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 속 풍경들이,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지금 나는 회사라는 울타리 바깥에서, 아주 천천히 세상을 다시 배워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