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의외로 건강이었습니다. 아픈 데가 낫는다기보다는, 무너지던 리듬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퇴사 후 경험한 수면, 식습관, 스트레스 등 일상 속에서 체감된 회복의 순간들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눈이 먼저 알아챈 변화, 수면이 달라졌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에서 6시간 사이였습니다. 충분히 자려고 해도 일찍 출근하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고, 퇴근 후 쌓인 피로를 해소할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잠드는 시간은 늘 늦어졌습니다. 잠자리에 들어도 머릿속은 다음 날 업무 생각으로 복잡했고, 깊은 잠은커녕 새벽에 중간에 깨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퇴사 후 처음 며칠간은 그동안 밀린 수면을 보충하듯 푹 자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아침 알람이 필요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눈을 뜰 수 있었고, 몸의 피로를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게 단순한 ‘휴식 효과’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의 질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깊은 수면의 지속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자도 자도 개운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7시간 정도만 자도 몸이 가볍고 맑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면 리듬이 자연스럽게 몸에 맞춰지니 아침의 기분도, 하루의 컨디션도 전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밤에 ‘내일 출근’이라는 압박감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차이였습니다. 퇴사는 단순히 수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수면의 질을 해치는 심리적 압박을 덜어준 결정이었습니다.
식사와 나의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땐 식사가 늘 ‘업무 중간에 끼워 넣는 무언가’였습니다. 아침은 거르기 일쑤였고, 점심은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았으며, 저녁은 회식이나 배달 음식에 의존하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때론 스트레스를 핑계로 단 음식이나 자극적인 음식을 폭식하기도 했고, 하루 세끼를 제대로 챙긴 기억이 손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퇴사 후, 식사라는 행위는 내 하루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천천히 끓인 미음이나 오트밀 한 그릇, 점심엔 냉장고 속 재료로 조리한 건강한 한 끼, 그리고 저녁은 거르거나 가볍게 마무리하는 식. 바쁘지 않으니 식사 준비 자체가 하나의 여유가 되었고, 먹는 행위가 ‘살기 위한 습관’이 아니라 ‘몸을 위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특히 느꼈던 점은, 자극적인 음식이 줄어들면서 소화도 훨씬 편안해졌고, 폭식 욕구도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내가 조리한 음식을 먹는 과정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고, 자연스럽게 간식이나 커피 섭취량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 하나는 ‘배고픔을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업무에 치여 배가 고파도 참고, 식사를 뒤로 미루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내 몸의 신호에 훨씬 더 민감해졌고, 그에 따라 반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식과의 관계가 곧 나와의 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을 체감한 시간이었습니다.
스트레스의 소음이 사라지자, 멘탈이 고요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퇴사를 ‘도피’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 역시 ‘버티기 어렵다’는 감정을 끌어안고 퇴사를 결심했고,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나는 내 스트레스에 무뎌져 있었고, 무기력함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음을요.
퇴사 후,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니 머릿속 소음이 줄어들었습니다. 메신저 알림, 회의 알림, 상사의 피드백,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던 사람들 간의 관계, 감정 노동…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졌고, 그 공간을 대신 채운 것은 뜻밖에도 ‘침묵’이었습니다. 처음엔 그 조용함이 낯설고 불안했지만, 점차 그 고요 속에서 내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사라졌다는 건 단순히 걱정거리가 없어진 게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이 되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직장에 있을 때는 늘 스트레스를 짊어진 채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스트레스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갔던 겁니다.
지금은 감정의 변화를 더 빠르게 감지하고, 피로가 쌓이기 전에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멘털이 무너지기 전에 나를 돌보는 감각이 생겼고, 작은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던 반응도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생존 모드가 아니라, 회복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차이는 일상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삶의 밀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퇴사 후, 내 삶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히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수면이 깊어지고, 식사가 건강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바쁘게 사는 것이 무조건 건강한 것은 아니며, 멈추는 선택이 삶을 더 정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느리고, 덜 효율적이며, 목표 없이 흐를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진짜 건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