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쉬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연습의 연속이었습니다. 쉼은 게으름이 아닌 회복의 시간이며, 마음과 몸을 다시 마주하는 용기였습니다. 이 글은 그 시간을 지나며 마침내 이해하게 된 '쉬는 용기'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쉬어도 된다고 말하기까지, 나를 설득한 시간들
퇴사 후 누군가는 저에게 “이제 좀 쉬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스스로는 쉬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날이면, “나는 지금 낭비하고 있는 걸까?”라는 자책이 따라왔습니다.
그 자책은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생산적인 사람’으로 살아온 제 내면의 습관이었습니다. 사회는 ‘열심히 사는 사람’을 칭찬하고, ‘쉬는 사람’에게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런 시선 속에서 자란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멈추면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리곤 합니다.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해도, 쉬는 법을 모르면 그것은 온전한 쉼이 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처음엔 휴식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이후 계획’이나 ‘돈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다음 할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느라 실제로는 아무것도 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진짜 쉼에 도달하기까지, 저는 제 자신을 설득하는 시간을 거쳐야 했습니다. “쉬어도 괜찮아, 지금은 그럴 수 있어.” 그 말을 내 안에 완전히 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쉼과 게으름 사이에서 나를 흔든 감정들
‘쉰다’는 것과 ‘게으르다’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을 자주 혼동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날이면,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딘가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괜히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고, 아무 의미 없는 SNS 스크롤이나 유튜브 시청으로 시간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진짜 쉼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더 피로해졌습니다. 쉼이란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공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되는데, 저는 그 공백을 견디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 한 권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습니다. “회복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문장을 읽고 난 후부터 저는 ‘쉼’을 스스로 허락해주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날이더라도,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처음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그 감정을 통과하며 느꼈습니다. 진짜 쉼이란 ‘쉴 수 있는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나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성과가 없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마음을 회복시키는 첫걸음이었습니다.
회복은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쉬는 것도 용기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회복이란 단어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쉼이 허락된 삶 안에서, 저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창밖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일기처럼 마음을 풀어내는 글을 쓰는 일.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상이, 제 삶의 리듬을 천천히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회복은 요란하게 오지 않았습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고, 하루하루가 늘 의미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안한 시간을 지나고 나니,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내 마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무엇에 불안했고, 어떤 순간에 안정을 느끼며, 무엇이 나를 진짜 지치게 만들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쉼은 내가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몰랐던 이 감각은, 멈춰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말할 수 있습니다. 쉬는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라고. 결국 쉬는 것은 용기였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서 한 발짝 벗어나, ‘지금은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용기. 그 말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해주는 일이, 퇴사 후 나에게 가장 큰 배움이자 위로였습니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쉬고 있고, 괜찮습니다.”